특수한 근대적 계약 형식으로서의 임금 노동

근대에서는 하나의 계약 형식이 전면에 등장하는데, 이 형식은 구조적으로도 또한 그것의 일반화에 있어서도 새롭다. 즉 한 인간이 자신의 노동력을 일정 시간 동안 화폐와 교환하여 파는 임금 계약. 이 형식은 그것이 계약권의 물음이고 비로소 시민사회의 물음은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전개되어야 한다.

구조적으로는 추상적 계약 개념의 하나의 특수한 적용이 문제된다. 두 자유로운 의지가 하나의 대상에 대해 합의한다. 그러나 대상은 독특한 종류이다. 그것은 판매자가 내어주고 그로써 손을 떼는 사물이 아니라, 일정 시간 동안의 한 인간의 삶의 활동이다. 그로써 임금 계약은, 헤겔이 인격에 대한 절과 소유에 대한 절에서 전개한 양도 가능성의 한계에 접경한다. 인격 자체는 양도 불가능하다. 그녀의 의지, 그녀의 인륜적 삶, 그녀의 인격성은, 인격이기를 멈추지 않고서는 그녀가 팔 수 없다. 로마의 노예 계약은 이 한계를 노골적으로 침해한다 — 그것은 인간을 사물로 만든다. 근대적 임금 계약은 그것을 노골적으로 침해하지는 않고, 그 한계를 이동시킨다. 전체 인격이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녀의 노동력만이, 그리고 단지 일정 시간 동안만 판매된다. 그러나 노동력은, 그것이 결부되어 있는 인격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자는 자신의 삶의 활동의 일부를 팔며, 계약 기간 동안 구매자는 강한 의미에서 판매자의 인격에 대해 처분한다.

임금 노동의 발생은 명료하게 표지될 수 있다. 임금 노동은, 둘러치기(enclosures)에 의해, 길드적 결속들의 해체에 의해, 초기 산업적 국면에서의 자본 집중에 의해, 생산자들의 생산 수단으로부터의 분리가 수행되는 만큼 일반화된다. 스스로 자립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생산 수단을 가지지 않은 자는, 살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타인들에게 팔아야만 한다. 임금 노동자의 “자유”는 이중적이다. 즉 신분적 결속들로부터 자유롭지만, 또한 고유한 생산 수단들로부터도 자유롭다. 이 이중성이 핵심적 계약 형식으로서의 임금 노동의 역사적 조건이다.

이 형식의 타당성은 개념적으로 문제적이다. 형식적 구조는 일반적 계약 개념에 상응한다. 즉 두 자유로운 의지가 합의한다. 그러나 계약이 체결되는 현실적 조건들 하에서, 의지들의 평등은 종종 단지 형식적일 뿐이다. 자립을 위한 수단들이 그에게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대안을 가지지 않은 자는, 형식적 평등을 부식시키는 하나의 구조적 비대칭 하에서 계약을 체결한다. 마르크스는 이 지점을 다른 어떤 전통보다도 더 날카롭게 정식화했다. 즉 임금 계약은 형식적으로는 동등자들 사이의 교환으로 현상하지만, 내용적으로는 한쪽 계약 당사자가 타자의 생명 시간에 대해 처분하는 하나의 관계이다. 이것이 가장 날카로운 형식의 목적론적 전도이다. 수단으로서 기능해야 할 것(노동자의 욕구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노동력)이, 타인의 목적들(자본 가치 증식)의 수단이 되고, 그 수단을 파는 인격이 사실상 수단의 수단이 되는 것. 양도 가능한 영역들과 양도 불가능한 영역들 사이의, 외적 목적 합목적성과 내적 목적 합목적성 사이의 헤겔의 구분이 척도를 제공했다. 마르크스는 현실적 관계들이 그것을 침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세한 경제적 분석 — 임금 노동이 자본주의적 운동 G–W–G’ 내부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잉여 가치가 무엇인지, 이것으로부터 축적 역동성이 어떻게 생기는지 — 은 자본주의 편에 속하며 거기서 수행되어야 한다. 여기 법철학에서는 임금 노동의 계약권적 지위가 해명되어야 한다. 임금 노동은, 형식적으로는 추상적 계약의 도식을 충족시키지만, 내용적으로는 양도 가능성의 한계에 부딪치는 — 그리고 자신의 일반화의 사실적 조건들 하에서는 계약이 자신의 의미를 가지는 상호적 승인을 체계적으로 침해하는 — 하나의 계약 형식이다. 이 긴장이, 추후의 인륜이 포착하고 처리해야 할 것 — 조합 안에서, 경찰 안에서, 쟁탈되는 지형으로서의 국가 안에서 — 이다.

4. 불법과 그것의 지양

추상적 법은 자기 안에 아직 자신의 타당성에 대한 보증을 포함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나의 소유를 주장하지만, 타자는 도둑질하고, 또는 우리가 계약을 체결하지만, 한쪽이 그것을 파기한다면 — 그때 법이 단순한 당위로서 자의적 의지를 결속시키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난다. 불법은 법에 대한 시금석이다. 즉 불법은 법이 스스로를 주장하도록 강제한다.

헤겔은 세 단계를 구분한다. 순박한 불법(양측이 법 안에 있다고 여긴다 — 해석 다툼), 사기(법의 가상은 유지되지만, 내용은 침해된다), 그리고 범죄(의지가 법을 공공연하게 부정한다).

형벌은 부정의 부정이다. 그것은 범죄를 보복을 통해서가 아니라, 범죄자를 이성적인, 그러므로 법 능력 있는 인간으로서 진지하게 취함으로써 지양한다. 즉 그는 자신의 행위를 통해 자신을 위한 하나의 법칙을 정립했으며, 이 법칙이 그에게 적용된다. 형벌은 범죄자를 명예롭게 한다 — 처음에는 역설적인 정식이지만, 그러나 바로 이것은 그가 조련되어야 하는 동물로서가 아니라, 그의 행위가 의미를 가지는 자로서 취급된다는 점을 말한다.

이로써 추상적 법은 그러나 자신의 한계에 도달했다. 추상적 법 안에서 형벌은 복수가 된다. 즉 상처 입은 자가 되갚고, 이제 얻어맞은 자도 자기 쪽에서 다시 — 법이 스스로 종결시킬 수 없는 하나의 나선. 더 높은 심급이 필요하며, 이 심급은 단지 외적 폭력이 아니라 내적 통찰이다. 이로써 추상적 법은 자신을 넘어 도덕성을 향해 밀어붙인다.